[스크랩] 북천면 - 이명산
하동의 구전설화집에서...............이맹산(理盲山)이 이명산(理明山)으로
영산(靈山)인 이맹산(理盲山)은 북천면과 진교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을 옛날에는 전야산. 해양전산. 화전산. 륜산. 동경산 등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불렀으나 이맹산이라는 이름에는 그럴사한 내력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이맹산(理盲山)이라 불리게 된 것은 이산의 최상봉인 월계봉(月鷄峯)의 정상에 깊은 못이 있는데 이 못에는 승천(昇天)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공을 들인 이무기가 득천(得天) 하지 못한 분풀이로 심술이 나면 물위로 목을 길게 내밀어 방향을 잡아 독기를 내 뿜었다. 그러면 그 방향의 사람이 갑자기 맹인이 되곤 하여서 그때부터 이맹산(理盲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불안 공포에 떨면서 속수무책으로 한해 한해 무사하기만 기원하며 살았다. 제단(祭壇)을 만들어 이무기에게 제물(祭物)도 바치고 때로는 처녀도 바쳤지만 그 횡포(橫暴)는 변함이 없었다. 근심과 불안에 떨면서 전전긍긍하던 차에, 어느 날 도승(道僧) 한 분이 이맹산(理盲山)주변의 한 마을에 탁발을 와서 보니 마을사람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기에 이상히 여겨 시주 나온 어느 부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수심이 가득하니 필유곡절(必有曲折)할 터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사오이까? 스님의 물음에 그 부인은 수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 예, 스님 다름이 아니오라 저 이맹산(理盲山) 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이 못에 이무기 한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무기가 심술이 나서 고개를 쳐들어 독(毒)을 뿜어내면 그 방향의 마을에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장님이 되고 하니 근심이 떠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 스님은 마음속으로 “고얀 미물(微物)이로다. 한갓 미물(微物)이 어찌 불심(佛心) 깊은 사람들을 이다지도 괴롭힌단 말인가?” 하고 한탄하며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스님은 이무기를 물리칠 방법을 마을 사람들에게 일러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마을회의를 열어 몇 명 안 되는 주민들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일을 추진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 작업에 착수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무기는 고개를 동경 쪽으로 쳐들어 강한 독기를 내뿜었다. 공교롭게도 공주(公主:경주에 있었던 신라왕의 공주)의 눈이 멀게 되었다. 임금님(신라왕)은 당황하여 전의(典醫)를 불러 공주의 눈을 뜨게 한 사람에게는 상을 후하게 주겠다고 하였다.
이때 한 도사가 아뢰기를 동경의 곤방(서남쪽)에 이맹산(理盲山)이란 산에 살고 있는 이무기의 소행 같다고 아뢰었다. 임금님은 즉시 신하들을 곤방으로 보내 이맹산(理盲山)을 찾아 산정의 깊은 못에 이무기를 발견하고 이를 잡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다 먼저 번 도사가 가르쳐준 사실과 인근 주민들의 계획을 알게 되었다.
신하들은 도승이 가르쳐 준대로 돌을 불에 달구어 못에 집어넣을 것을 결정하고 인근주민을 총동원하여 수 십대의 불무를 산봉우리에 설치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을 달구어 계속 물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자 이레(7일)만에 물이 뜨거워져 끓자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굉음과 함께 용지(龍池)의 물결이 요동쳤다. 청천(晴天)하늘에 풍운과 폭우를 끌어와 용은 승천을 시도하려고 물 위로 솟구쳤다.
그러나 죄를 지은 이무기는 득천(得天)을 못하고 남쪽의 깊은 못을 찾아 잠적하였는데 그곳이 진제하심연:하늘로 놓은다리)에 있는 깊은못>이었다. 거기서 이 이무기는 남해의 해룡(海龍)이 되어 왜구(倭寇)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용이 되었다고 하며, 이 이무기가 이맹산(理盲山)에서 옮겨간 후에는 맹인(盲人)이 생기지 않았고 공주도 눈을 떠서 광명(光明)을 찾았다 하여 이맹산(理盲山)을 왕명으로 이명산(理明山)으로 개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명산(理明山) 정상에는 그때 불에 달구려고 모아온 많은 돌을 볼 수 있으니 이명산(理明山)의 설화는 실화로 고증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맹산(理盲山)의 용이 득천(得天)하기 위해 하늘로 사다리를 놓았던 곳이라 하여 민다리(용다리)라 하였고 민다리를 한자로 의역(意譯)하면 진교(辰矯)라는 글이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하동현(河東縣) 산천(山川)조를 보면, 理盲岾在縣東二十里(이맹점재현동이십리) 俗傳東京裨補山頂古有龍沼以此東京人多盲(속전동경비보산정고유용소이차동경인다맹) 人極炳焉以火鐵石沈池龍徙昆陽辰梯下深淵此後人不盲(인극병언이화철석심지용사곤양진제하심연차후인불맹)이란 기록이 있다.
이를 보면 이명산은 신라 문무왕(文武王)9년(668)때 신라의 서울 경주를 비보하는 산으로 중요시하면서 야사화(野史化)가 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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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산 : 570m (경남 하동군 북천면 )
(산행 코스 : 산 중턱에 있는 北川 수련원 →마애불상 →理明山(570m)
→마애불상 →北川 수련원, 약 2.5km, 산행시간 약 2시간)
이명산은 사천과 하동의 경계 지점에 있는 산이다. 동쪽으로는 유명한
"다솔사"가 있는 봉명산(사천 곤양면)이 있고, 서쪽으로는 이명산(하동군
북천면)이 있다. 보통 다솔사에서 시작해서 봉명산 정상을 거쳐 이명산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로 산행을 많이 하지만 봉명산은 몇번 가봤기 때문에
이명산만 갔다 왔다. 사천에서 하동으로 산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있기
때문에 실제 산행 거리는 짧다.
이명산 전설...
옛날 이 동경산에 연못이 있었는데 이 연못에 사는 이무기를 내 ?i기위해
진교면 월운리 마을사람들이 돌을 불에 달구어 연못에 넣고 연못물을 끓여
이무기를 내?i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 연못자리를 보려면 진교면 월운리
백토마을에서 가파른 산길을 따라 문턱바위, 상사바위를 지나면 정상에
이르는데 옛날 못이 있던 자리는 지름 20m 정도 중앙이 약간 꺼져 있고
당시에 날라다 구워 던졌던 돌무더기를 볼 수 있다.
산행 중간지점에 바위에 새겨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이 있다.
"마애석조 여래좌상 (경남 문화재 136호)"
산 능선에 다다르면 괴상하게 생긴 집채만한 바위가 마치 악어가 입을쩍
벌린 형상으로 버티고 있다. 이명산 전설속의 이무기가 여기 있는가..
산행이 시작되었던 수련원 뒤에 있는 전원 주택이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