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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호암(故 李秉喆 회장)생가(1)

범산 2008. 2. 5. 21:47

  호암(故 李秉喆 회장)생가는 그동안 개방이 되지 않아 답사시 상당한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런데 호암 타계 20주기를 맞아 지난해 11월 29일부터 개방되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다시 가보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신년 초 모 스포츠 신문사에서 취재 안내 제의가 있어 지난 1월 8일 취재기자와 동행하여 답사를 하였다.

당초 호암생가만 취재하려는 기자에게 호암생가 인근에 있는 LG 구회장, GS 허회장, 효성 조회장 생가도 가보자고 하여 이들 4곳과 의령 솥바위까지 돌아보았다. 

                       

                        단아한 담장이 둘러져 있고 뒷편은 낮지만 가파른 산이 경계와 담장 역할을 한다.

 

  호암 생가는 1851년 호암의 조부께서 당시의 전통한옥 양식으로 지었는데, 1969년 중수를 한 이후 기와 교체 등 몇 차례 보수 공사를 거친 이 집에서 이 회장이 태어나서 분가(19세, 결혼은 16세))할 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이 집은 대문과 사랑채, 창고 그리고 안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집안에 우물이 두 군데 있는 것이 여늬 집과는 다르다.(기본앨범 참조)특이한 것은 안채 바로 뒤에 높지는 않지만 가파른 산이 있어 자연스럽게 경계를 이룰 뿐만 아니라 담장 역할까지 한다. 

                     

                      집 안에서 밖으로 본 대문, 좌우로 방이 하나씩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좌측에 안내 팸플릿이 있는데, 팸플릿에는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峰)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氣가 산자락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穴)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地勢)가 융성할 뿐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재물이 쌓이는 명당(明堂)"이라는 풍수적 해설도 있다.

생가 관리소장이 전해준 이야기를 더하면;

 -집 뒤 우측으로는 산이 약간 앞으로 돌출되어 있고 이어서  조금 더 돌출된 낮지만 절벽 같은 바위가 우측 담장 너머까지 이어지는데,  이를 두고 주산에서 뻗은 명당 기운이 돌출된 바위에서 휘돌아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안채에서 계속 소용돌이치는 천하의 명당이라고 말하는 풍수사가 있는가 하면,

                   

                    안채는 산에 바짝 붙쳐서 지었는데 우측으로 산이 약간 돌출되고 이어서 약간 더

                    돌출된 바위가 담장 너머까지 이어진다.(근접 사진은 기본 앨범 참조)

 

- 또한 바위 윗부분에 총총히 균열되어 가지런히 놓인 모습을 보고, 곡식가마니를 쌓아 놓은 노적가리 형상이어서 이 집에 큰 재물이 쌓이는 명당이고

-바위 아래 부분에 칼로 자른 듯이 균열이 되어 있는 모습이 시루떡을 쌓아놓은 형상으로 시루떡과 노적가리 모습이 더해진 천하의 명당이라고 하는 풍수사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곳에서 100 여m 정도 떨어져있는 호암이 분가하여 살았던 집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지 궁금하다.   

집 주위의 산이 노적봉이고 바위 때문에 명당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농촌에서 주위에 산이 없는 집과 거리 차이는 있지만 바위가 없는 집이 몇 채나 있을까?

발복한 양택에 대해 이처럼 꿰맞추기를 하면 명당 아닌 집이 어디 있고, 명당 아닌 산소가 어디 있겠는가?

또한 몰락한 집을 두고 이리저리 꿰 맞추기를 하면 흉가 아닌 집이 없을테고, 흉지 아닌 무덤이 어디 있을까?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호암생가 터는 전체가 명당이라고 보아도 될 만큼 대단한 生氣穴이 흐르는 곳인데, 특히 대문, 사랑채, 안채가 놓인 곳에 강한 生氣가 흐른다.                                      

이 중에 가장 강한 생기가 흐르는 핵심지에 놓인 곳이 안채로 군왕혈급(명당 2급지)을 넘어  황제혈급(명당 1급지)에 해당될 만큼 좋은 명당이고,

다음으로 사랑채는 안채보다 약간 떨어지기는 하지만 군왕혈급에 해당되는 명당자리이며,

대문은 이보다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대단한 명당에 배치되었다.

호암이 이렇게 좋은 명당의 집에서 그리고 명당의 선대산소(증조부모는 이 곳 집터와 거의 비슷한 명당임)로부터 전달되는 同氣感應을 받고 태어났으니 세계 굴지의 삼성그룹을 창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계굴지의 재벌로 성장한 삼성그룹이 근래에 좋지 않은 일로 세인의 입에 종종 오르내리는 것은 호암의 묘소 영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호암의 묘소 역시 군왕혈급의 명당이나 정확한 핵심지를 약간 벗어나 있다.

-호암묘소의 地氣는 현재 삼성그룹의 위상이나 규모에 비해 좀 약하다고 사료된다.

-현재의 삼성그룹을 뒷바침 하려면 현재 묘소 보다 좀 더 강하고 큰 生氣가 흐르는 곳이라야 격에 맞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산에 바짝 붙쳐 배치된 안채의 地氣가 가장 좋다. 황제혈급이라고 할 만큼 좋은

                    명당임.

 

호암 생가가 개방됨에 따라 부잣집 기운을 받으려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방문하면 안채 가까이에서 가능한 오래 머무는 것이 더 좋다.

 

<참고>

1, 이날 동행 취해하였던 기사ㅡ스포츠 서울 "핫이슈, 재벌가 명당 순례" (1월12일자 22면 전면)ㅡ를 아래 답사기 방(201~203번 글)에 옮겨 놓았으니 읽어 보면 다른 내용도 볼 수 있음.

2, 2006년 여름에 이곳을 답사하면서 호암생가로 알고 답사기를 올렸는데, 그 곳은 호암이 분가하여 단기간 살던 집이었기에 해당 글에 바로잡아 놓았음.

3, 호암이 분가하여 살던 집에서 100m 정도 더 들어 간 곳에 생가가 있다.

4, 호암이 분가하여 살던 집 역시 生家와 비슷한 生氣가 흐르는 명당인데, 生家의 주요 건물이 生氣穴 핵심지에 더 잘 맞추어져있다.

5, 분가하여 살았던 집은 아직 일반에게 개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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