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출현한다.’는 말이 과연 올바른 표현일까요? 주역 계사전에서는 ‘신(神)은 방소(장소)가 없다’, 즉, 없는 곳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神과 鬼는 엄연히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묶어서 ‘귀신’으로 통용하고 있으므로 지금 神과 鬼를 각각 얼(魂; 혼)과 넋(魄; 백)으로 나누어 갑론을박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과는 다른 주제로 삼을 경우 깊이 파고들어 밝히면 그 논의가 자못 심각합니다. 어쨌든 그저 무언가 으스스한 느낌이 들고, 그것이 완전한 인격체의 형상이든 머리가 없는 괴상한 모습이든, 평온해야할 나의 집이 음산하고 불쾌한 기운에 휩싸인 것을 「귀신 나오는 집」으로 정의하면서도 방점은 鬼에 두겠습니다.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서 공자님은 ‘나는 괴이한 일, 힘쓰는 일, 난동부리는 일, 神에 관하여는 말하지 않는다.(子不語怪力亂神)’고 하셨습니다. 즉, 현실과 동떨어진 것, 비이성적인 것, 초자연적 실재에 관하여 ‘불어(不語)’하셨습니다. 공자님께서는 鬼가 아니라 神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네요. 그렇지만 당신께서는 「팔일(八佾)」편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조상님들이) 살아계신 것같이 하며, 神에게 제사 지낼 때에는 神이 있는 것같이 행하라.......’라고 하셨으니 분명코 神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전자와 후자의 문맥과 취지는 다르지만 여하튼 비교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神외에도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語’입니다. 혼자 말하는 것을 ‘言(말씀 언)’이라고 하며 상대방이 있는 경우는 吾(나 오) 자와 합하여 ‘말씀 어(語)’를 사용합니다. 공자님께선 제자들이나 기타 상대방과 괴력난신(怪力亂神)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시지 않았다는 뜻이지, 당신 혼자서는 추론과 사색, 독백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神에게 제사 지낼 때에는 神이 있는 것같이 행하라’는 가르침이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불어(不語)’하신다는 것과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귀신 나오는 집」에 관한 저의 글은 제 스스로의 학문적 추구이며 ‘言(말씀 언)’에 해당합니다. 저는 오로지 鬼와 양택에 대한 현공학적 관점을 살피고 그 해법의 논증을 통하여, 으스스한 모든 현상을 괴력난신(怪力亂神)으로만 여기며 풍수를 미신취급하는 증상만(增上慢)들에게 비과학이 아닌 초과학의 치밀한 논법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제, 초계 선생님의 『현공풍수의 이론과 실제』에 나오는 귀신 나오는 집을 예로 들겠습니다. 먼저 아래 비성반을 보십시오.
7運 子坐午向(下卦)에 해당하며 남쪽 향궁 쪽은 낮고, 북쪽 좌궁 쪽엔 물[水]이 있어서 쌍성회좌 합국입니다. 또한 산성으로써 전반합십의 기국을 이루고 있네요. 초계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내용의 출전(出典)은 장중산 선생님의 『음양이택녹험』인데 이에 의하면,
‘(중략) 그런데 이 집에 종종 (귀신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중략) 8運 初에 장선생님의 제자 전운암이 未方으로 대문을 옮긴 후로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초계 선생님께서는 위 내용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주(註)를 붙이셨으므로 아래에 그 내용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135쪽 참고)
「여기에 아주 중요한 점이 있다. 8運에 向星8은 坤宮에 있는데 坤宮(未, 坤, 申)에서도 未方으로 대문을 낸 특별한 이유가 있다. 子坐는 天元이니까 未坤申에서도 天元에 해당되는 坤方으로 대문을 내야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중략)
未方만 陰이 되고 坤方과 申方은 陽이 된다. 집의 坐向이 子坐午向에서 子나 午는 陰이기 때문에 未坤申중에서도 같은 陰에 해당하는 未方으로 대문을 내야한다. 만약에 坤方이나 申方을 대문으로 내면 음양이 차착(差錯)되어 작용력이 미약하여 효력이 적다.」
초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의 핵심은,
① 음양차착(陰陽差錯)
② 작용력(효력)
두 가지입니다. 그러면 각 항목별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음양차착(陰陽差錯)
먼저 단어부터 살펴봅니다. ‘差’ 자는 어긋난다는 뜻이고 ‘錯’은 섞이다, 어지럽다는 뜻입니다.
불가의 『임제록(臨濟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의심즉차 동념즉괴(擬心卽差 動念卽乖)」.
이 말의 영어권 번역(『The Record of Linji』)을 보면,
‘The moment he applies his mind, he’s already differed,
The moment he arouses a thought, he’s already deviated.’ 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뭔가를 하고자하면, 그는 이미 differed가 되어있고,
어떤 특정한 생각(a thought)을 일으키면 그는 이미 deviated되어 있다’입니다.
의견이 서로 다른 것을 ‘differed’라고 합니다. ‘differential gear(차동 기어 장치)’는 자동차가 노면의 요철(凹凸) 위를 주행할 때 서로 다른 바퀴의 회전수를 적절히 분배하여 구동시키는 장치이므로 ‘差’ 는 도덕률에 관계없이 나와 대상(對象)이 특정한 비율로 분배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의심즉차(擬心卽差)는 내가 마음으로 뭔가를 하고자 하는 순간 이미 내 마음은 ‘본체’와는 특정한 비율만큼 다르게 작동하는 것을 경계한 말이며, ‘乖(deviated)’는 궤도를 벗어난 것을 뜻하므로 내가 이런저런 생각 가운데에서 특정한 생각을 일으키면 그 순간 나의 마음은 벌써 본체의 궤도를 벗어나 있습니다.
음양차착(陰陽差錯)에서의 ‘差’는 결국, 음과 양이 서로 다른 비율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음은 마이너스(-), 양은 플러스(+)이므로 다르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치 요철 위를 차동기어를 구동하고 주행하듯이 우주의 도로를 ‘差’의 상태에서 각각의 율려(律呂)를 갖고서 운행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착(錯)‘은 착오(錯誤), 착각(錯覺) 등의 용례에서 보듯이 ’일치하지 않은‘ 무언가를 뜻하지만 이 또한 부정적인 표현이 절대 아닙니다.
주역 「계사상전」 제1장에는 ‘팔괘가 서로 움직여서(八卦相盪; 팔괘상탕)’라는 말씀이 있고, 「계사하전」 제1장에는 ‘팔괘가 열을 베푸니(八卦成列; 팔괘성렬)’라는 말씀이 있으며, 「설괘전」 제3장에는 ‘팔괘가 서로 섞이니(八卦相錯; 팔괘상착)’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설괘전의 말씀은 복희의 선천팔괘에 대한 설명인데, 일건천, 이태택, 삼리화, 사진뢰, 오손풍, 육감수, 칠간산, 팔곤지가 서로 섞여[相錯], 산과 못이 각각 하늘과 땅의 성기가 되어 기운을 통하고[산택통기],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혀[뇌풍상박] 조화를 멀리 빠르게 베풀어지도록 하고, 물과 바람이 수승화강의 작용으로 인하여 서로 죽이지 않습니다.[불상석]
그러므로 ‘착(錯)‘은 천지, 우주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음양차착(陰陽差錯) 그 자체에서 우리는 그 어떤 부정적인 해석도 추론할 수 없습니다. 팔괘가 열을 베풀고 움직여 서로 섞이는 모습은 너무나 당연한 역(易)의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해석은 ‘差錯’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운에 따른 섞임의 비율에서 찾아야 합니다. ‘差錯’은 명(命)의 소관이요, 부정적 결과는 분(分)의 소관입니다.
위 귀신 나오는 집의 대문을 곤방이나 신방이 아니라 미방(未方)에 내는 이유를 우리는 ‘음양차착’을 피하기 위한 것임을 초계 선생님의 명징한 설명으로써 알게 되었습니다. 초계 선생님의 엄중한 분석을 희석시킬까 염려스럽지만 우스갯소리를 하면 사람이 사는 집에 귀신이 출현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음양차착이지 않을까요. 인간은 양이고 귀신은 음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계사전의 말씀을 생각하면, 사람이 사는 집이든 빈 집이든 귀신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득할 것이고, 다만 어떤 형태와 방법으로든 사람이 그들을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인식의 문제는 분(分)과 연결됩니다.
여하튼 귀신은 음(陰)입니다. 그래서 귀신이 있어야 할 자리, 즉 귀신의 분(分)에 맞는 조치가 필요하므로 양방(陽方)인 곤방과 신방이 아니라 음방(陰方)인 미방(未方)이야말로 귀신이 머물고 출입해야 할 분(分)에 합당한 낙서구궁의 공간(空間)입니다. 더구나 子坐午向에서 子나 午가 음(陰)이므로 더욱 더 초계 선생님의 말씀에서 소당연(所當然)적 추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연하면, 사례로 든 그 양택의 향(向)이 음(陰)이라는 것은 그 좌향의 상(象)을 포착한 대성괘에서 향(向)의 위(位)가 짝수 자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짝수 자리에는 음효가 와야만 정위(正位)라고 합니다. 이렇게 정위가 되어야 할 대상은 비단 귀신만이 아니라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 모두 포함합니다. 귀신이 ‘보인다.’는 것은 음효가 동(動)하여 양효가 되었다는 것을 일상적 용어로 나타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미방(未方)에 대문을 낸 것은 그 집의 괘가 동하여 지괘로 되지 않게끔 하는 조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작용력(효력)
‘음양차착(陰陽差錯)’으로써 미방(未方)에 대문을 낸 것을 설명하면서 의구심이 듭니다.
① 귀신이 음이므로 음방으로 드나들도록 그쪽에 대문을 낸다.
② 子坐午向에서 子나 午가 음(陰)이므로 같은 음(陰)인 미방(未方)에 대문을 낸다.
위 ①과 ②의 추론을 전적으로 인정할지라도 24개의 방위 가운데에서 다른 음방(陰方)은 관두고 하필 미방(未方)이라는 음방(陰方)에만 대문을 냈을까요. 여러분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아마 전운암 선생님과 초계 선생님께선 ‘비인부전, 천기누설’을 걱정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저의 짧은 식견을 총동원해 보겠습니다.
먼저 24개의 방위 가운데에서 미방(未方)과 귀(鬼)의 연관성을 찾아 나섭니다. 본 게시판의 다른 글(9147)에서 28수가 각각 어떤 24좌에 속하는지 도표로 나타낸 적이 있습니다. 그 표를 보시면 미방(未方)에는 귀수(鬼宿)가 속해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귀수(鬼宿)가 어떤 별자리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아래 그림을 보십시오.
『보천가(步天歌)』에서는 귀수(鬼宿)에 관하여,
「귀수는 네 개의 별(星)로 궤짝 같은 모습이며 가운데에 흰 것은 ‘적시(積尸)’라고 하는 기(氣)이다.(저는 빨강색으로 표시했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는 적시(積尸)를 하나의 별로 표시했지만 사실 시력이 좋은 사람이 봐도 그냥 뽀얗게 보일뿐이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적시(積尸)는 시체들이 쌓여있다는 뜻이어서 으스스한 느낌마저 듭니다. 『보천가(步天歌)』의 나머지 설명을 해석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귀수 위에 있는 네 개의 별로 된 것은 봉화를 뜻하는 관(爟)입니다. 나라의 위급한 일을 알려서 방비하는 일을 주관합니다. ‘적시’아래에는 바깥 부엌을 의미하는 ‘외주(外廚)’가 있고, 더 내려가면 짐승들의 수명을 관장하는 ‘천기(天記)’가 하나의 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천기 옆에는 마치 개가 집을 지키듯 하늘을 침범하는 도적을 방비하는 ‘천구(天狗)’라고 하는 별자리가 있고 제일 아래쪽엔 토지신을 뜻하는 ‘천사(天社)’자리가 있습니다.
종합하면, 귀수는 죽음과 질병, 그리고 제사를 주관하는 별자리이며 하늘의 눈(天目)으로 간사한 음모를 사찰하고 말을 기르고 병사를 양성하며 옷감, 금, 은 보석을 비축하는 일을 주관합니다.
단순히 별자리의 이름에 귀(鬼) 자가 있다고 하여 억지로 귀수(鬼宿)와 연관 지은 것이 아닙니다. 『보천가(步天歌)』에서 보았듯이 귀수(鬼宿)에서 시체들을 모아두는 일(어쩌면 강제소환일지도 모르겠습니다)이 당연히 이승을 떠난 귀신을 상대하는 것이고 개가 귀신을 본다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귀수(鬼宿) 주변에서 개처럼 지키는 별자리가 있는 등등....... 이런 모든 일들로 볼 때 귀수는 귀신들이 가장 꺼려하는 별자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귀수의 방위가 미방(未方)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전운암 선생님은 이런 이치를 아셨기에 24좌 가운데의 다른 음방위는 제쳐두고 동일한 음방위이면서도 귀수(鬼宿)의 방위에 해당하는 미방(未方)에만 대문을 낸 것이라고 저는 추론합니다.
미방(未方)에 대문을 내었을 때 더 이상은 귀신이 ‘나타나지 않는다.’와 ‘보이지 않는다.’는 글자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동안의 귀신들이 어쩌면 보천가에서 말하고 있는 귀수의 ‘적시’로 빨려 들어갔을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 또 다른 차원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계사전에서는 분명히 신이 없는 곳이 없다고 하였으므로 대문을 어디에 설치했든 집에 있었던 귀신들이 모조리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 귀신들의 발산하는 음기(陰氣)의 세기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할 만큼 현저히 줄어들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 이유는 귀수(鬼宿) 아래 위치한, 토지신을 뜻하는 ‘천사(天社)’의 역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귀와 신을 구별할 때가 되었습니다. 鬼는 음에 속하고 사람이 죽으면 육신에 남아있는 넋의 다른 이름입니다. 물론 불교에서 말하는 ‘중음신’이라는 존재 또한 동일한 음신이라는 측면에서 神이 아니라 鬼입니다. 귀는 땅으로 돌아갑니다. 아니 돌아갔어야 합니다. 어떤 사유로 인하여 특정한 양택에 머물며 음기를 발산하고, 그 음기가 사람들이 인식할 정도로 강할 경우 우리는 종종 굿을 하거나, 퇴마를 하거나, 부적을 붙이는 식의 신비한 행위에 매달립니다. 이러한 행위는 상극 또는 상생이었는가를 떠나서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괴력난신’에 해당합니다.
易에 근거하고, 28수와 관련된 여러 문헌들을 참고하여 鬼가 드나들 우주적인 문호를 열어주고 오고갈 길을 터주며, 음양이 차착되지 않도록 사람과 鬼 각각 정위를 지키면서 분(分)에 합당하도록 ‘대문 하나 미방에 내는 것’, 이것이 바로 현공풍수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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